A special day
1.
월차를 냈었다. 제주도 카캠핑 연기 되었지만 월차는 그대로 두었다. 오랫만에 좀 긴거리 산행을 해보고 싶었다. 몸을 한계점까지 몰아 부치면 찾아오는 마음의 아늑한 상태를 맞이하고 싶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알고 있었지만 웬만한 비는 맞을 생각이었다. 4시에 일어나 보니 비가 제법 많이 오고있었다. 기상청에 들러 예보를 보고 다시 잤다. 5시에 다시 일어나 보니 역시도 산행을 하기에는 무리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전에 둘째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적막감이 찾아왔다. 거실로 내놓은 PC의 소음이 무척 거슬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파워서플라이 쇼핑을 하다보니 모르는 ATX니, 24핀 주전원이니, SATA2 전원이니, 6핀 보조 전원이니 등등등 생소한 용어들이 많았다. 무소음 정도 검색해서 적당한 가격이면 하나 장만해 볼까 시작을 했었는데 5년전 구입한 PC 파워 서플라이와 지금의 것들과는 많이 공백이 있었다. 예전의 PC파워 선택기준은 오로지 watt와 가격일 뿐이었다. 지금은 connector의 종류가 무척 다양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PC파워의 사양을 확인하기 위해 PC case를 열었다.

공유기가 설치 되었이니 필요없어진 100M lan card를 제거했다. 10년전 제품이었다. Netgear 제품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Bay networks라는 상호도 보였다. 맞다. 그때 Cisco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큰 Network장비 제조회사가 있었지~. 잊고 있던 옛기억이 되살아 났다.

빈 PCI 슬롯을 막기위해 PC 부속등 잡동사니 상자를 찾았다. '지난 이사때 모두 버린것은 아닐까? 그럼 먼지 방지를 위해 다시 막아야 하나?'

상자는 금방 찾았다. 거기에 지금 쓰고 있는 pops4u PC의 각종 드라이버가 보관되어 있었다. '지난번 PC 새로 엎을때 드라이버 다운 받느라 한참 인터넷을 뒤져야 했는데....' 기억력의 한계를 확인했다. '앞으로는 쉽게 PC를 엎겠군. 또 모르지....... 까먹을지'


같이 보관되어 있는 5.25" 디스켓을 보고 오늘이야 말로 오랜 숙제꺼리를 해결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FDD가 PC본체에서 제거된지도 꽤 오래다. 10년은 된것 같다. 수십장의 3.25"는 버렸지만 몇몇장의 5.25"는 버리지 못했다. 버리지 못하고 5.25" 드라이버와 같이 보관을 했다. 얼마전에도 "이광구의 바둑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단행본 책을 찾게되었다. '이 책안에 ketel시절에 읽던 바둑을 소재로한 단편 소설들이 있을까? PC tools의 이야기도 어딘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을까? 5.25인치를 빨리 옮겨놓아야 하겠군'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나온 '그대가 성장 하는 길'이 보였다. 그 책은 작은 문고판이었는데 그 책을 다 쳐넣는데 약 1주일이 걸렸다. 그 것을 다 쳐넣고는 한글 자판을 손과 머리에 익히게 되었다. 2벌식 한글 자판 교재였던 셈이었다 .

Ketel에서 긁어 모은 각종 *.lzh 압축 화일과 자료실 목록도 보였다. '저 압축이 풀리면 무슨 옛 기억이 피어 오를까?' 낡아 빠진  드라이브가 시간 여행을 이끌어 줄 마법의 램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거인은 5.25" 디스켓의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다. 과더 나중에 열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약한 플로피에 든 거인은 이미 쇠약해져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이 그를 꺼낼 마지막 기회일런지도 몰랐다.

90년초 제대후 처음 IBM 호환 PC를 접했을때 이놈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어떤 PC는 이것을 두개 어떤 PC는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보조기억 장치라고 했다. 두개인 녀석은 하드 디스크가 없는 놈이라라고 했다. 여기에 플로피를 넣고 도스를 띄워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난 DOS는 커녕 OS의 개념이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PC는 Z80을 CPU로 쓰는 Altair 였다. 그 녀석은 전원을 넣으면 Basic prompt가 떨어졌고 필요한 application은 user가 짜 넣거나 남이 짜놓은 code를 load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computer를 배운다는 것은 programing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저 큰 입을 가진 드라이브는 나의 구식 인식 개념과 바뀐 computer 환경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았었다.
드라이브는 주물로 짜여진 튼튼한 프레임 속에 램프를 감추고 있었다. 램프를 열기위해선 생명의 줄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케이블은 있을까? 다시 잡동사니 상자로 가 보았다.

사용한 흔적이 없는 케이블을 쉽게 찾았다. 저렇게 꼬아 놓은 것은 B: 드라이브였다는 기억도 하나 되살아 났다. '그 옛날 나름대로 꼼꼼히 챙겨 놓았었군'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cable만 연결하면 램프는 살아난다.

아뿔사. 보관된 A급 새 cable의 connector는 마법의 램프에 물릴래야 불릴 수 없는 모양새였다.

램프를 열어 거인을 불러내지는 못했지만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하기는 했다. 모처럼 먼 옛날을 거슬러 갔다온 special day의 오전이 다 갔다.

2.
점심을 먹고 오전에 예약해둔 영화를 보러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꺼꾸로 간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갔다. 단지 박스오피스 순위와 전에 미리본 사람이 "생각해 볼만하게 한다"라는 comment만 참고로 하였다. 너무 시간을 빠듯하게 마쳐서 허겁지겁 서둘러야 했다. 발권을 하려고 하니 전산망이 다운되어 있었다.

수기로 표를 끊어 주었다. 이것도 신기했지만 극장안에 들어서니 오로지 나만이 유일한 관객이었다. 마치 극장을 전세낸것같은 같은 기분이 들었다. J10번 정중앙에 혼자 않아 약 3시간동안 혼자서 나만을 위해 틀어주는 영화를 봤다. 영화관이 조금은 춥게 느껴졌는데 난방은 나 혼자만을 위해 해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브래드 피트를 찾을 수 없었다. 늙은이로 태어난 벤자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젊어지면서 브래트 피트가 조금씩 드러났다. 아직도 젊고 잘생긴 배우라 아니할 수 없었다. 벤자민이 늙은이로 태어나 조금씩 덜 늙어갈때 까지가 가장 흥미진진했다. 젊어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눈앞에서 회춘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년을 거쳐 갓난아이로 까지 되었을 때는 현실성이 너무나 동떨어져 흥미가 많이 줄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볼만한 영화라고 하고 싶다. 특히 벤자민 어굴의 주름과 몸이 보여주는 젊어지는 것과 데이지의 얼굴 주름과 몸이 조금씩 늙어가는 분장술 또는 특수 효과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영화는 늙어가고 젊어지는 스토리가 한 축이고 그 축 주변에 회자정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구조였다. 두가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예인선 선장이 벤자민에게 한 말은 "개판을 쳐도 좋고 날뛰어도 좋지만 마지막에는 제자리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배를 적군 잠수함으로 몰고가다 배로 빗발치던 기관총탄을 맞고 죽었다. 배는 잠수함과 충돌했다. 무르만스크에서 만난 벤자민의 연인은 그녀의 나이 18에 도버 해협을 최초로 건넌 여성이 될 뻔 했지만 프랑스를 2 mile 앞두고 포기를 했고 그 후로 뭐든 제대로 마무리를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훗날 벤자민은 우연히 TV에서 그녀가 68세의 나이에 도버해협을 건너고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오랜시간 영화에 빠져들었고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 극장 스태프가 나만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영화관을 나서며 영화도 재미있었고 전세경험도 새로와서 즐거운 맘이 되었다. special day의 오후가 갔다.

by clockwiz | 2009/03/14 14:23 | CLOCKWIZ_day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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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훈현서아빠 at 2009/03/16 14:16
정말 특별한 날 이었군.
나도 예전 플로피 들을 버린지 오랜데,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대단하군...
난 87년도에 숙제한다고 하드드라이브가 없어서 저 드라이브에 저장을
안하면 수백줄을 짠 프로그램이 한순간의 실수로 사라져 버리는
마법이 생각나고는 하는군~
덕분에 영화도 잘 보았어..
Commented by clockwiz at 2009/03/16 15:54
있을때 HDD로 빽업을 받아 두었어야 하는데.. 이젠 버려야 할 때가 된것 같다. 인터페이스 케이블 구 할때 있을까? 혹..
Commented by 지훈현서아빠 at 2009/03/16 16:16
오잉~ 일주일 전에 아마 구시대 PC를 대여섯대 버렸는데, 거기에 있지 않았나 싶네... 아깝다.
USB 연결 드라이브로는 3.5인치를 본적이 있는거 같은데 5.25인치도 어디 있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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